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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솟통] 구가 썼던 글, "세상에 혼자 남은 도마뱀에 대하여"


솟통 홈페이지 펌
(http://www.sottong.net/sottong/index.php?option=com_content&view=article&id=49:2010-11-17-07-56-08&catid=29:2010-11-16-08-28-32&Itemid=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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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에 혼자 남아버린 도마뱀의 이야기가 나오는 태국 영화를 보았다. 그 적막한 외로움에 대해 생각하다가 나는 영화의 맥을 놓쳐버렸다. 영화관에서 나와 나는 창밖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카페에 앉아 혼자서는 먹을 수 없을 분량의 도너츠를 다 먹어버렸다. 사람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나는,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도너츠를 씹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장애를 동시에 가진 사람은 보통사람보다 평균수명이 현저하게 짧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외로움. 누군가 다가와 주지 않으면 영원히 계속되는 깊고 어두운 고독 속에서 혼자 느린 시간을 견뎌내며 빠르게 죽어가는 것이다.
외로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얼굴을 보며 통화할 수 있는 문명을 만들어 낸 인간은 아직도 외롭다. 혼자이면서 외롭지 않은 인간은 이브가 나타나기 전의 아담이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혼자 있는 인간이 외로운 이유는 관계 속에서 태어나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속해 있는 유유자적살롱(이하 유자살롱)의 MEET-ribe Project(Music as Empowering, Employing and Tribe-making)는 외로운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다. 학교를 비롯한 사회적 중력이 존재하는 곳들에서 서서히 배제된 아이들. 칠십 노인도 외로움 때문에 곧 끝날지도 모르는 인생을 미리 종결시키는 선택을 하는 사회에서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외로움에 그들의 삶이 잠식당하고 있다. 자고 일어나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도 아닌데 홀로 남아버린 도마뱀처럼 외로운 아이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처음 만난 도마뱀은 중 1때부터 약 3년 동안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아이였다. 약 1년간의 과정을 거쳐 용기를 내 유자살롱의 기타레슨을 받으러 온 그 아이가 있다는 사실만 알았지 한 달 동안 담당 뮤지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아이를 볼 수는 없었다. 죽고 싶을 만큼 외로웠지만 다시 나온 세상의 사람들은 또 죽고 싶을 만큼 무서운 존재라고 나중에야 그 아이가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그 아이와 우리는 아주 사소한 것들을 함께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아이의 인생에 상처가 될까봐, 그 아이는 다시 또 상처를 받을까봐 서로 두려운 게 많았지만 서로에게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고, 같이 걸었으며 함께 연주를 시작했다. 그 무렵 유자살롱을 드나드는 또래 애들과 그 아이가 만나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 우리가 한 일은 사무실 앞 녹색소파를 그들에게 내어준 것, 그들과 함께 농구를 한 것, 그들이 연주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준 것 뿐이다. 그런데 약 8개월이 지난 지금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다.
첫 번째 도마뱀은 상처날까봐 두려워했던 관계맺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상처가 나지만 그 상처가 아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며 굳은 딱지가 생겨 떨어져나가기를 반복하며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리게 알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첫 번째 도마뱀은 두 번째 도마뱀을 돌보기 시작했으며, 자신과 타인의 즐거움을 위해 밴드공연을 하게 되었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한 것일까?

아직은 정확히 말할 수 없다. 다만, 음악의 힘을 믿었고, 관계의 힘을 믿었다. 북을 치면 심장이 울리듯 아이들은 악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다음에는 자기 옆의 사람을 알게 되고 그렇게 관계의 그물망을 조금씩 직조해 나갔다. 첫 도마뱀이 믿고 따른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그 뮤지션이 없을 때 아이는 집으로 돌아갔고, 어딜 가도 그 뮤지션만 따라 다녔다. 오직 하나의 끈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 끈이 다시 또래에게, 유자살롱 사람들에게 넓혀졌고 그 아이는 이제 하나의 끈이 끊어진다 하여도 상처받을지언정 스스로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선택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니 세상에 혼자 남아 하루를 보낸 도마뱀은 다시 잠이 들며 생각할 것이다. 내일 잠에서 깼을 때는 오늘 하루가 꿈이었기를.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다른 한 마리의 도마뱀이 나타나기를.
그것이 자의였든 타의였든 삶의 한 국면에서의 선택이 삶 전체를 뒤흔들도록 방관하는 사회는 비겁하다. 다른 선택일 뿐이었으므로 다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원한다면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답지를 들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유자살롱만이 정답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다양한 답지 중 하나가 되고 싶을 뿐이다.

[유자사운드] www.yoojasalon.net

: 유자살롱에서 아이들과 연주하고, 농구하고, 뛰어다니고, 안고, 산책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인디뮤지션들로 구성된 하우스 밴드